경제, 사회 시사

[신동욱 앵커의 시선] 정치인의 자존심이란

동션샤인 2021. 8. 27. 21:42


[신동욱 앵커의 시선] 정치인의 자존심이란

기사입력 2021.08.26. 오후 9:49 최종수정 2021.08.26. 오후 10:00 기사원문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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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관을 쓴 선비가 꼿꼿이 앉아 노려봅니다. 동그란 안경 너머로 던지는 매서운 시선이 의연하고 오연합니다. 비통함을 참듯 지그시 다문 입술엔 결기와 기개가 감돕니다. 그가 묻는 듯합니다. "너는 지금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느냐"고.

보물로 지정된 '매천 황현 초상' 입니다. 황현이 썼던 안경과 문방사우도 국가 등록문화재입니다. 이미 20대에 책 만 권을 읽었다고 하지요. 나라가 망하자 그는 제자들에게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했습니다.

"새도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인간 세상에 지식인 노릇 하기가 어렵구나" 당나라 시인 왕범지는 실밥이 밖으로 가게 버선을 뒤집어 신고서 세상의 위선자들에게 일갈했습니다.

"그대들 눈에는 거슬릴지언정, 내 발을 불편하게 할 수는 없다네" 세속적 고정관념을 벗어던진 자존 선언입니다.

아버지의 농지법 위반 의혹이 제기된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대선 경선 후보와 의원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습니다. 국민권익위 조사를 "흠집내기식 끼워맞추기"라고 주장하면서도 "염치와 상식을 주장해온 제가 신의를 지키는 길" 이라고 했습니다.

지난해 국회 연설 "나는 임차인입니다"에 쏠렸던 이목을 의식한 듯 "국민 앞에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겁니다. 국민의힘은 "아버지 의혹에 윤 의원이 개입한 바가 없다"며 만류했지만 그는 탈당보다 강도 높은 결정을 거둬들이지 않았습니다.

권익위 조사에서 의혹이 불거진 세 정당 스물다섯 명 의원 중에 사퇴를 밝힌 사람은 그가 처음이자 유일합니다.

민주당에선 두 비례대표가 제명돼 의원직을 유지했고, 나머지는 탈당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중엔 본인 농지법 의혹이 제기됐던 사람만 네 명입니다. 국민의힘은 절반을 징계에서 제외했고, 열린민주당은 김의겸 의원에게 '셀프 면죄부'를 줬습니다.

민주당에선 윤 의원이 "쇼를 한다"는 비아냥이 나왔습니다만 다들 부끄러워해야 할 일입니다. 그동안 이 비슷한 '쇼' 조차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부친의 부동산 투기 의혹에 윤 의원이 얼마나 관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자체에 대해선 평가를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윤 의원의 파격이 헛 자존심만 내세워 아등바등 부인하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모습만 보여준 우리 정치판에 겹쳐져 신선하게 도드라져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여기서 백석의 명시 한 구절 보시지요.

"내가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8월 26일 앵커의 시선은 '정치인의 자존심이란' 이었습니다.